베스트프렌드 스토리

평범한 것은 싫다. 내가 희망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평범한 것을 싫어했다. 드러머처럼 특이한 것을 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 항상 하루하루를 나의 시험무대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지금의 베스트프렌드한국어학원을 만들기까지 힘들고 좋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내 인생의 전환점들을 회상하며 한 장의 일기를 남겨 본다.

계속되는 의구심

어린 시절부터 한국인으로서 내가 배워왔던 생각들과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관에 대해 피부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많은 의구심을 가졌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나와는 완전히 다른 기준과 가치로 살아가고 있는 곳은 없을까? 하고 말이다.

인생의 목표, 내가 가야 할 길, 20대의 복잡한 심경들 !@#$%^&*…..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이 그렇듯이 나도 군대를 제대하였다. 제대 후 대학교에 돌아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남들과 똑같이 도서관에 앉아 토익 시험을 준비했다. 그냥 남들처럼 인생의 아무런 목표도 꿈도 없이 파도에 몸을 맡긴 난파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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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 것도 많고 볼 것도 너무 많은 우리 인생! 미지의 세계로 발을 돌리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항상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 한다는 생각들이 나를 한시도 가만 두지 않았다. 난 무작정 캐나다 벤쿠버로         향하게 되었다. 2년간의 캐나다 생활은 나에게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 지혜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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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의 대가가 되다

처음 집에서 시작했던 하우스 파티가 밴쿠버에서 입소문이 나게 됐다. 집이 꽉 찰 정도로 외국인들이 몰려 왔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작은 시도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 같다.
한국 사람만큼 정이 많은 멕시코인 아이렌과 에드가 커플, 파티를 열 때면 항상 와주었던 친구들이다. 둘이 잠깐 헤어질 고비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엿한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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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텐더 자격증을 따다

뭔가 기억에 남는 자격증을 따고 싶어서 취득하게 되었다. 캐나다 바텐더 아카데미 코스의 반 친구들 중에서는 나 혼자 아시안이었다.     수업을 이해하기 너무 힘들었지만 내가 신기한 듯 많은 관심을 준 친구들 덕분에 무사히 수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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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영어 선생님 Allen!

중년의 나이에 결혼하지 않고 고양이와 함께 멋지게 인생을 즐기는 Allen.
사랑하는 사람을 하늘로 보내고 자신도 그 뒤를 따라간 슬픈 사랑이 나의 가슴에 아직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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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일본친구들

케사, 레이지, 사찌코, 아키, 미유끼 내 룸메이트형~ 작은 방이지만 항상 우릴 찾아 주었던 따뜻했던 일본 친구들. 그때 일본인에 대해 아주 좋은 기억을 만들 수 있었다. 가끔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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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언어는 달라도 통하는 게 있다!

한국인 만큼이나 술을 좋아하는 아이리쉬 친구 Niall! 밤을 새우면서 자주 술을 마셨던 친구다. 캐나다 유학 후에는 한국 사람과 한국 축구가 너무 좋아 한국에 영어를 가르치러 오게 되었다! 한국엔 어딜 가도 술집이 많다고 매우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모습이 아직도 나를     웃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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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은 달라도 가족처럼 힘이 된 조이스 패밀리

캐나다 타지 생활에 서로 힘이 되어주었던 시노, 미호, 이즈미, 뿅짱, 시원, 준이. 하루하루가 마치 시트콤 처럼 잊지 못할 추억들이다.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각자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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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온 후 나의 첫 직장!

스위스 동료와의 사진 한 장!
여러 나라의 바이어들을 만나며 해외에 나갈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일이라 나름 만족하며 회사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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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極進)의 마음으로 뒤는 돌아 보지 않았다. 베스트프렌드한국어학원을 준비하다!

대학교 4학년 졸업반에 취업이 되어 야간으로 수업을 옮겨 회사가 끝나면 곧장 학교로 달려갔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집에 와서 밤을   새우며 베스트프렌드한국어학원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사실 지금 당시로 돌아가라면 두 번 다시는 못할 것 같다. ^^

드디어 베스트프렌드한국어학원의 초석을 이루어내다 그리고…

외국친구들과 교포들이 한국에 올 때 겪었던 문제들을 해결해주기 위해 발룬티어 유학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회사가 쉬는 주말에는 공항 픽업과 숙소 안내를 도왔다. 곧 5,000명이라는 회원이 생겨났고 한류와 함께 뜨거운 반응을 보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인생의 전환점 ! 선택의 기로

회사를 그만두다.

내가 원하는 일과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베스트프렌드한국어학원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 주위 사람이 모두 미쳤다고 했지만 후회하는 삶은 살기 싫었다. 그냥 부딪쳤다.

무작정 사무실을 만들다.

당시 내가 가진 건 발룬티어 유학 홈페이지 하나 뿐… 회사를 그만두고 그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간절히 필요했다. 몇 개월간 미친 듯이 사무실을 찾아 헤맸고 아주 우연한 기회가 나에게 찾아 왔다!

꿈이 실현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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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실현되다!

한국을 알리자! 외국인과 교포들을 위한 “베스트프렌드한국어학원 & 한국 유학원 & 신촌베스트프렌드 스터디룸” 언어 학습과 문화       교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베스트프렌드한국어학원과 외국어학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외국 유학 후에 대한민국이라는 내 나라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남다른 애국심도 생겨났다. 한국 유학과 한국어의 세계화를 이끌기 위해 베스트프렌드한국어학원 한국 유학원을 만들고 이후 한국어 학원, 그리고 원어민과 1:1 방식으로 회화를 공부하며 외국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외국어 학원을 설립하였다.

최초 한국워킹홀리데이협회, 한국홈스테이협회를 설립하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며 체계적인 숙소와 취업을 위한 프로그램을 최초로 개발하였고 기업화 시켰다. 현재는 전세계 300만명 이상의 외국인들을 지원했으며 전세계 100개 이상의 기업들과 제휴하여 한국 유학을 선진화 시킬 수 있었다.

왜 우리의 것을 우리가 알리지 못할까?

한국을 알리고 문화를 알리는 것은 어떤 단체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 하나하나가 민간 사절단의 역할로 외국인들과 교류한다면 한국 문화와 언어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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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프렌드한국어학원을 시작하며!

내가 무언가에 열정을 느끼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들이 있어 행복함을 느낀다. 기회와 열정 그리고 사랑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실패와 성공을 떠나 항상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했음에 만족할 것이다.  항상 나를 지켜봐 주고 믿고 함께 해준 분들과 항상 큰 힘이 되어준 Jun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베스트프렌드한국어학원이 모두의 꿈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 글을 올리며

베스트프렌드 CEO 노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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